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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메아리/구민투고

11월 독자 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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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종섭(효성동)

 

“여보, 가족끼리 노래방 가서 스트레스나 확 풀어볼까?”
“노…노래방? 뭐… 쩝.” 

 

원래 노래를 잘 못하는 나는 그동안 가족들과 함께 노래방 한번 가본 적 없는 무드 없는 가장이었다. 아내와 아들딸은 종종 노래방에 가서 실컷 소리지르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지만, 그런게 취미에 안 맞는 나는 번번이 그 자리에 불참했다. 

 

그러던 얼마 전 주말, 아내와 아이들의 강권에 못 이겨 네 식구가 처음으로 완전체가 돼 노래방에 가게 됐다. 가면서도 내심 고민이 됐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노래 한 곡도 제대로 못 부를 것 같은 중학생 아들놈과 우리 같은 성인들은 흉내도 못 낼 댄스곡을 부르는 고딩 딸내미가 50대 부모와 어울릴 수 있을까? 괜히 썰렁한 분위기로 세대 간 갈등만 확인하는 건 아닌지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노래방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우였다. 용기 있게 마이크를 잡은 아들 녀석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던 샌님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멋들어지게 노래 한 곡을 뽑았다. 고등학생 딸내미 역시 뭐라 말하는지 흉내조차 내지 못할 랩으로 최신 유행곡을 내리 3곡씩이나 부르는 게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은 서로 코러스도 넣어 주고 댄서 역할까지 하며 그야말로 잘들 놀았다. 그 빠른 랩 가사를 한 구절도 안 틀리고 계속 부르며 마이크를 놓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는 ‘아니 저 녀석이 평소에 암기 과목 힘들다고 하더니, 거짓말 아냐?’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 아빠의 구닥다리 ‘강타령’ 노랫가락에는 아이들이 분위기에 맞춰 탬버린을 쳐주며 휴대폰 카메라를 터트려 주었고, 열렬한 박수까지 보내면서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는 동안 훌쩍 2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처음으로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통해 어느새 엄마 아빠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의 진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학원, 과외 다니랴 한 달 내내 보충 수업하랴, 제대로 쉴 틈도 없었던 아이들을 생각해 다음부터는 노래 공부를 해서라도 노래방에 함께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공부든 노래든, 친구나 이성 문제든 마음이 열려야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법이다. 노래방에서 마음이 터진 아이들을 보며 우리 가족만의 스트레스 해소법도 알았다. 이제라도 분위기에 맞춰 애비 노릇 제대로 하는 가장이 돼야겠다.


 

글. 유병숙(다남동)

 

며칠 전, 아이들이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르던 무렵이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학원에 갔던막내가 다녀왔다는 인사도 없이 제 방으로 쑥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따라 들어가 보았더니 녀석의 눈가가 촉촉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집으로 오던 중에 옆집 아줌마를 만나서 인사를 드렸는데 ‘학원 갔다 오니?’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네’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로 좀 짜증이 날 것 같았어요. 시험 잘 봤냐고 물을까 봐서요.” 여기까지 한 말로는 아이가 시험을 잘못 봤다는 의미였다. 

 

성적보다 그런 일로 마음 아파하는 아이가 더 안쓰러웠다. 그런데 아줌마가 “학교 재밌지? 친구들하고도 즐겁고?”라며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주시길래 갑자기 울컥했단다. 대답을 못하고 땅바닥만 보며 걷고 있는데 아줌마가 다시 또 “힘들지? 그래 알아. 공부만 때가 있겠니? 노는 것도 때가 있으니까 놀고 싶을 땐 실컷 놀아라 얘, 아줌마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가자”고 하시더란다. 

 

여기서 그냥 또 울컥….어른들은 만나면 “시험 잘 봤냐, 점수 잘 나왔냐, 어느 대학 갈거냐, 인 서울 할 수 있냐”라고만 물어서 인사하기도 싫었는데, 제 마음을 알아주는 아줌마가 고마웠다고 눈시울을 적시며 쿨럭였다. 

 

같은 또래 자식을 키우는 입장인지라 한 마디 한 것이겠지만 남의 아들 마음을 다독이며 말을 걸어 준 이웃집 그이가 무척 고마웠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아들 친구들을 길에서 만나면 우선은 시험 잘 봤냐면서 성적을 묻는 것으로 대화를 트곤 했었는데, 나는 한 번이겠지만 만나는 아줌마들마다 성적을 묻고, 공부 잘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아들과 아들 친구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처를 입듯이 따스하고 다정하게 건넨 한 마디에 힘과 용기, 위안을 얻기에 그동안 생각 없던 내 말들에 반성하게 됐다.


이제는 아들 친구들을 만나면 “시험 잘 봤니?”라고 묻기보다 “학교 재밌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렴. 놀때는 스트레스 다 버리고 실컷 놀아라!”라며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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