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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메아리/구민투고

1월 독자 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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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변경념(용종동)


2023년 11월 2일 목요일 아침. <슬기로운 영화 생활>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작품성이 있는 감독의 작품을 다양한 시점에서 감상해 보는 수업. 지난 시간에 이어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영화 <컨택트>를 보았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만약 당신의 인생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그걸 바꾸겠어요?”


“난 이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알고 있어도 , 난 모든 것을 껴안을 거야”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순간 내 마음이 ‘쿵’ 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에서 주인공은 미래를 알고 있었고, 미래의 자신과 가족에게 펼쳐지는 불행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50대 중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립을 하게 되자 자신을 돌아다보는 시기가 되었다.

 

그때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 다. ‘ 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삶의 결과가 만족스럽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든 간에 누구나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소위 세상의 프레임에서 바라보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그 누군가는 늘 에너지가 넘치는 활동적인 사람이었기에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렇지 않다.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 부끄러워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냥 현재를 살아내고 있기에 그런가 보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만약 미래를 안다고 하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낼 수 없지 않을까. 살아갈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래도 삶이 궁금해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불안해서 타로나 점도 보지 않는가. 오히려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하루가 비슷한 일상을 살지만, 무엇인가를 시도해 볼 수도 있고, 꿈도 꾸어볼 수 있지 않은가. 그 꿈이 거창하지 않아도 일상이 다채롭고 활기가 생기는 것으로도 감사하다. 올해의 삶은 작년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었다. 새해 첫날 다이어리에 글을 끼적이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리학을 공부했으면 한 치 앞을 알았어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단지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공부였다. 내년도 나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과 배움이다.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좋은 에너지를 받았기에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윤석천(계산동)

 

바쁘다는 핑계로 그간 연락조차 못 나누던 친구를 망년회나 하자며 2년 만에 만났다. 식당에서 각각의 아내와 남편과 아이들 둘씩 모두 8명이 만나 식사를 하게 됐다. 워낙 한참 만에 다시 만난 터라 친구네 아이들의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인사를 하긴 해야겠는데 아이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직접 대면하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애는 건강하게 잘 컸구나”라며 ‘애’라는 대명사 하나로 안부를 묻는 인사를 갈음했다. 아내 역시 친구네 아이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아주 엄마랑 국화빵이네”, “잘 컸구나” 등의 칭찬으로 얼버무리고 있었다. 

 

아이들에 관한 우리 쪽의 대화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관계로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민망한 반전이 일어났다.


“얘 지호는 키가 장동건만 하네. 너 안 닮아서 다행이다. 하하하”


친구가 말한 지호는 우리 아이 이름이다. 친구는 우리 애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지수는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지? 장래 꿈이 뭐야? 얼굴 예쁜 거 보니 최소한 미스 코리아는 되겠구나 얘”라며 딸내미 볼을 만져주던 친구 아내의 말이었다. 친구 아내는 우리 딸 이름뿐 아니라 나이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친구에게 한없이 고맙고 미안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던 하루였다. 

 

살다 보면 친지, 이웃, 동창, 친구, 직장 등에서 가족 단위의 만남을 갖게 되는 날이 적잖다. 그런데 대화 중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아주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편 자녀의 이름과 나이, 특징 같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다. 우연한 자리에 상대방이 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순간, 그 상대방에게 고맙고 급격한 친밀도를 느끼게 된다. 내가 그러면 상대방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내 아이는 소중하다’라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어쩌면 ‘내 아이는 나보다 소중하다’라는 표현의 줄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상대방보다 더 소중한 상대방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더 나아가 몇 살인지,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 무슨 취미가 있는지까지 기억해준다면 이보다 나은 게 있을까 싶다. 수첩이건 휴대폰이건 자녀의 이름을 함께 메모하는 습관을 가짐이 좋을 듯하다. 

 

상대방의 소중한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보는 습관을 들여보자.
대인관계에 최고급 윤활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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