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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메아리/구민투고

6월 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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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 기슭에 굳건히 자리 잡고 강건하게 지켜왔던 계양예비군훈련장이 40년 만에 이전하면서 그 뒤편에 둘레길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뛰는 설렘으로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장미원까지 이어지는 새로 난 길을 쉬지 않고 내처 걸음을 내디딜 때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서 홀로 산행길에 올랐다.

 

그런데 초입을 찾지 못해 헤매기 시작했다. 시발점이 연무정인 줄 알았는데 입구에는 ‘등산로 폐쇄’라는 안내판과 함께 우측 등산로를 이용하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새길 방향은 분명 왼쪽인데 폐쇄라니, 순간 당황했다.

 

냉정을 되찾고 뒤돌아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등산로 대신 인도를 걸었다. 5분 정도를 걸어 경인여대 건물 옆을 지나 계양공원관리사무소 방향 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길이었다. 조금은 숨이 찼다. 공중화장실을 지나니 바닥에 노란 황톳빛 멍석이 눈에 들어왔다.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하느재고개로 오르는 길과 장미원으로 이어지는 새로 난 길이었다.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새길에 깔린 멍석 위를 한걸음 내디디고 나니 새 것에서 느껴지는 거친 힘이 등산화 바닥까지 와닿았다. 길은 경사진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총총걸음으로 내려서니 앙증맞은 목재 다리가 십여 미터를 떠받치고 있었다. 힘찬 걸음으로 또박또박 소리 내며 다리 위를 걸었다.

 

쉼 없이 둘레길 멍석 위를 걷다 보니 계양예비군훈련장이 떠난 빈자리에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며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직은 서툰 유혹이었다.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인지 수백 그루의 철쭉나무에 고작 두 송이 분홍 꽃만이 피어 있었다. 언젠가 모두 여리고 예쁜 분홍 꽃으로 피어날 때 즈음이면 그때는 그들의 아름다운 유혹에 흠뻑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성된 완만하고 고즈넉한 새로 난 둘레길의 끝자락은 거친 시멘트 바닥으로 점철되는 산림욕장 길과 손잡은 듯 맞닿아 있었다. 그 길 위로는 무장애나눔길 데크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도 처음 걸어본 길이라 색다른 맛이 있었다. 어디든 새길은 새로워서 좋다. 그것이 멋쩍고 세련되지 않아도 새로움을 안겨 주기에 좋다. 한참을 걷고 나니 장미원의 주역인 붉은 장미꽃이 반겼다.

 

그렇게 새로 난 길을 여유롭게 산행한 지 오십 여분이 지났다. 인천의 주산 계양산 기슭에 새롭게 선보인 둘레길. 그 길 따라 걷다 보면 우리의 삶도 새로움으로 채워지는 행운이 올 것이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새길을 걸어보자. 종일 행복감에 빠져든다. 



우리 할머니는 36년생, 88세이시다. 지난 설에 할머니 댁에 놀러 가니 뜬금없이 사진을 찍고 싶으시단다. 무슨 사진이냐 여쭤보니, 할머니의 마지막 사진이 될 영정사진을 찍고 싶으시다고 했다. 그 말이 참으로 듣기 싫었고, 아직은 마음이 준비된 것 같지 않아 에둘러 말을 돌려버렸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요즘은 영정사진이라는 말 대신 ‘장수사진’이라 부르고, 장수사진을 찍으면 더 오래 장수한다는 의미로 많이들 미리 찍어둔다고 했다. 대부분 환갑이나 칠순 때 잔치 사진으로들 한다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할머니는 그 흔한 잔치 한 번을 안 했다. 말로는 잔치할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할머니는 자식들 부담될까 행여나 짐이 될까 돈 쓸까 잔치를 한사코 거부하셨던 것이었다.

 

부랴부랴 할머니의 장수사진 찍을 사진관을 알아 보고 예쁘게 사진을 찍어드리려 할머니께 연락하니, 할머니는 “무슨 그런 사진을 찍는다니, 안 찍는다!” 라고 하셨다. 나이 먹으면 어르신들 마음은 갈대라지만, 찍는다고 하시고서는 안 찍는다 하시니 적잖이 당황 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어르고 달래 다시 사진관을 예약해 할머니를 모시고 예쁘게 사진을 찍으러 갈 계획이다. “할머니, 그동안 못 찍어뒀던 사진 내 핸드폰에 차곡차곡 저장해 둘게. 그리고 할머니의 예쁜 장수사진도 내가 찍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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