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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메아리/구민투고

독자투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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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커피값 2천 원

글. 김나연(작전동)

 

안녕하세요, 저는 계양구 어딘가의 카페 매니저입니다.
저희 매장에 자주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데, 오실 때마다 직원들 수대로 커피값을 주십니다. 정중히 거절해도 한사코 쥐여주셔서 괜히 마음이 불편했던 저는 커피값을 모으게 됐습니다. 

 

언젠가부터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하나둘 본인의 몫을 건네주기 시작했습니다. ‘내 행동에 혹시 눈치를 보는 걸까’ 염려되어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모두 일말의 탐조차 보이지 않아 모인 돈이 여러 개의 마음으로 보였습니다.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궁리 끝에 ‘커피값’을 진정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궁금해졌습니다. 그간 당연히 보답을 드렸지만 모조리 거절 당한 터라, 주시는 것 말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마침 한산한 시간대에 오신 어느 날 슬쩍 여쭤보았습니다.
“여기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 그리고 젊은이들만 오는 곳인데 눈치도 안주고 아는 얼굴들이 늘 반갑게 맞아주고. 집이 먼데도 여기만 와요. 병원 끝나고 한 잔 마시고 가면 기운나고 아주 좋아요.”


그리곤 괜히 늙은이에게 시간 뺏기는 거 아니냐며, 신경쓰지 말고 이제 가라시며 고개를 숙여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피값 2천 원 . 직원들 수 대로 쥐여주신 그 돈은 할아버지의 마음속 통행료와 다름없는 것이어서 왠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오실 때마다 오늘은 무엇을 잡수셨는지, 병원에서 어떤 진료를 받으셨는지 여쭤보며 조금 더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기에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주변 환경이 바뀌며 하나둘 자연스레 교류가 옅어질 때 가지게 되는 공허함은 아직 젊은 것이라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느끼신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앞으로는 저의 일터가 편하게 커피 한잔하러 오실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저희는 서로의 이름과 소박한 일상들을 나누며 조금 더 친밀해졌습니다. 최근엔 매일 오시는 고객님께서 할아버지께 먼저 인사를 건네어 두 분이 가볍게 대화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신 고객님이 가진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무척이나 설레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이웃이 생긴 그 순간을 발을 동동 구르며
몇 번이고 반복해 말씀해주시는 할아버지가 행복해 보여 듣는 내내 저희까지 덩달아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소중한 경험이 얼마나 있을까요? 언젠가는 하나둘 이곳을 떠나겠지만, 그 전까진 할아버지의 이웃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와의 일상이 행복한 기억으로 앞으로의 할아버지를 지탱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마음에 봄볕이 따스하게 들길 바라며

 

계양구 어느 카페 일동 올림


* 함께 모은 커피 값 20만 원은 모두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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